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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의료 기술과 세계 최고 수준의 기대수명을 자랑하는 2026년의 대한민국. 하지만 이 화려한 지표의 이면에는 ‘영양 후진국’에서나 볼 법한 기이한 역설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비타민 D 결핍’이다. 과거 영양 섭취가 부족했던 시절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구루병이 다시금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을 두드리고, 30~40대 젊은 층에서 골감소증 진단이 급증하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에서, 한국인들은 왜 집단적인 ‘햇빛 기근’에 시달리며 스스로 뼈를 무너뜨리고 있는가. 본지는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비타민 D 결핍의 병리학적 메커니즘과 한국 사회의 구조적 원인을 심층 진단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결과는 재앙에 가깝다. 대한민국 성인의 혈중 비타민 D 농도가 결핍 기준인 20ng/mL에 미치지 못하는 비율은 남성 약 75%, 여성은 무려 82%에 육박한다. 이는 일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유럽이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보다도 현저히 낮은 수치이며,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의학적으로 혈중 농도 20ng/mL 미만은 ‘결핍(Deficiency)’, 10ng/mL 미만은 ‘심각한 결핍(Severe Deficiency)’으로 분류된다. 놀라운 점은 한국인의 상당수가 10ng/mL 대의 심각한 결핍 구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북위 33~43도에 위치해 비타민 D 합성이 가능한 자외선 B(UVB)가 충분히 도달하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현대 한국인의 삶이 철저하게 ‘반(反) 태양적’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과도한 실내 노동과 학습 시간, 자외선 차단제의 일상화, 그리고 햇빛을 기피하는 문화적 특성이 결합하여 전 국민적인 ‘햇빛 차단막’을 형성한 것이다.
비타민 D를 단순한 ‘비타민’으로 이해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이것은 우리 몸에서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유사하게 작용하는 ‘전구 호르몬(Prohormone)’이다. 비타민 D의 대사 과정은 정교하다. 피부에서 합성되거나 섭취된 비타민 D는 간에서 ‘25-하이드록시비타민 D’로 전환되고, 다시 신장에서 최종 활성형인 ‘1,25-다이하이드록시비타민 D(칼시트리올, Calcitriol)’로 바뀌어야 비로소 제 기능을 수행한다.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칼슘 항상성 유지다. 뼈는 평생 생성과 파괴를 반복하는 동적인 조직이다. 비타민 D는 장에서 칼슘과 인의 흡수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흡수 촉진제’ 역할을 한다. 만약 비타민 D가 부족하면 장내 칼슘 흡수율은 10~15% 수준으로 급락한다. 이때 우리 몸은 혈액 내 칼슘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부갑상선 호르몬(PTH)을 분비하여 뼈 속에 저장된 칼슘을 강제로 녹여내기 시작한다. 즉, 비타민 D 결핍은 ‘뼈를 녹여 생명을 유지하는’ 악순환의 방아쇠를 당기는 셈이다. 이 과정이 장기화되면 소아는 뼈가 휘는 구루병(Rickets)에, 성인은 뼈가 물러지는 골연화증(Osteomalacia)과 골다공증에 직면하게 된다.
최신 의학계는 비타민 D 수용체(VDR)가 뼈뿐만 아니라 대장, 유방, 전립선, 뇌, 췌장 등 인체 거의 모든 조직과 세포에 분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비타민 D가 전신 건강을 조율하는 마스터키임을 의미한다.
첫째, 선천 면역 체계의 핵심이다. 비타민 D는 체내에 침투한 세균과 바이러스를 사멸시키는 천연 항생 물질인 ‘카텔리시딘(Cathelicidin)’의 합성을 유도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다수의 역학 연구에서 비타민 D 결핍 환자군의 중증화율과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둘째, 만성 질환 및 암과의 상관관계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을 비롯한 유수의 연구 기관들은 비타민 D 농도가 높을수록 대장암 등 특정 암의 발병 위험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비타민 D가 세포의 비정상적인 증식을 억제하고 세포 사멸(Apoptosis)을 유도하는 기전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셋째, 정신 건강의 조절자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 겨울철에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는 계절성 정서장애(SAD)는 뇌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합성에 관여하는 비타민 D의 부족과 직결된다. 햇빛 부족은 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부러뜨릴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결핍된 상태인가. 현대인의 생활 환경 곳곳에는 비타민 D 합성을 방해하는 ‘구조적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다.
가장 흔한 오해는 “창가나 차 안에서 햇빛을 쬐면 된다”는 믿음이다. 비타민 D를 합성하는 자외선 파장은 280~320nm 대역의 자외선 B(UVB)다. 그러나 UVB는 투과력이 약해 유리창을 거의 통과하지 못한다. 실내로 들어오는 햇빛은 피부 진피층까지 침투해 노화와 주름을 유발하는 자외선 A(UVA)가 대부분이다. 실내 일광욕은 뼈 건강엔 무익하고 피부 노화만 촉진하는 헛수고일 뿐이다.
자외선 차단제 역시 강력한 장벽이다. SPF 15 이상의 차단제만 발라도 비타민 D 합성 능력은 90% 이상 저하된다. 미용을 위한 철저한 차단이 건강을 위한 합성을 원천 봉쇄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음식을 통한 섭취도 한계가 명확하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 서구권 국가들은 우유, 시리얼, 오렌지 주스 등에 비타민 D를 의무적으로 첨가하는 ‘식품 강화 정책(Food Fortification)’을 시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자연 식품 섭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등 푸른 생선, 달걀노른자, 버섯 등에 비타민 D가 함유되어 있으나, 하루 권장량(최소 800IU)을 채우기 위해서는 매일 달걀 40개 혹은 우유 3L 이상을 마셔야 한다. 현실적으로 한국인의 식단만으로는 결핍을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현대인의 비타민D 결핍 [Gemini 생성 이미지]
이 만성적인 결핍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개인의 노력과 의학적 개입이 동시에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햇빛 회피가 능사가 아님을 강조한다.
가장 이상적인 자연 합성은 자외선 지수가 높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사이, 하루 20분 정도 팔다리를 노출한 채 산책하는 것이다. 이때 유용한 기준이 ‘그림자 법칙’이다. 자신의 그림자 길이가 키보다 짧을 때가 UVB가 충분히 지표면에 도달해 합성이 가능한 시간대다. 그림자가 키보다 길다면 태양 고도가 낮아 UVB가 대기권에서 산란되어 합성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직장 생활 등 현실적 제약으로 야외 활동이 어렵다면, 보충제 섭취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대한골대사학회는 성인 기준 매일 800~1000IU 섭취를 권장하며, 결핍이 심한 경우(20ng/mL 미만)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2000IU 이상의 고용량 요법이나 주사제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비타민 D는 지용성이므로 공복보다는 지방이 포함된 식사 직후에 섭취해야 흡수율을 50% 이상 높일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인류는 수백만 년간 태양 에너지에 의존해 진화해 왔다. 현대 문명은 우리에게 쾌적한 실내 환경과 하얀 피부를 선물했지만, 그 대가로 뼈의 강도와 면역 시스템의 균형을 앗아갔다. 대한민국에 만연한 비타민 D 결핍은 단순한 영양소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자연과의 연결이 끊어진 현대인의 병리적 현상이자, 다가올 초고령화 사회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예고하는 경고음이다.
뼈가 부러지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은 너무 늦다. 지금 당장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열어라. 그리고 점심시간 단 20분이라도 건물 밖으로 나가 태양과 마주하라. 그것이 당신의 뼈를 지키고, 나아가 무너진 면역의 성벽을 재건하는 가장 확실하고 경제적인 백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