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불타고 끊기고 잊히고…그대들은 종묘를 아는가
이성계 한양 천도 때 종묘 건립, 역대 왕과 왕비 신주 있어
왜란 때 소실 후 광해군 재건…101m 세계 최장 목조건물로
일제 율곡로로 창덕궁·종묘 단절, 이후 세운상가로 고립돼
정치싸움 무관한 '종묘 바로알기' 사업 병행도 논의하길
조선 왕과 왕비 신위 모신 종묘[연합뉴스 사진]
1392년 개경에서 즉위한 조선 태조 이성계는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왕실의 신위(神位)를 모시는 종묘(宗廟)를 세웠다. 곧 완공된 법정 왕궁인 경복궁보다 앞서 조성된 조선 최초의 국가 시설이었다.
종묘 자리는 실제로 재위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 혼령이 깃든 나무패)를 모시는 정전(正殿)과 태조의 아버지 이자춘(환조) 등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인물의 신주를 모시는 영녕전(永寧殿)으로 구성됐다. 이어 이성계는 땅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을 모시는 사직(社稷) 제단을 조성하고 제를 올렸다. 종묘는 왕조의 정통성을, 사직은 국가의 생존 기반인 국토와 농업을 각각 상징하는 장소가 됐다.
역사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종묘사직을 보전하소서'라는 말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국가를 지키겠다는 왕과 신하들의 엄숙한 다짐이었다. 그러나 '종묘'의 '묘(廟)'가 무덤을 뜻하는 '묘(墓)'와 발음이 같아서 많은 이들이 종묘를 왕실의 장례 시설이나 무덤으로 오해한다. 국민에게 한자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탓이 크다.
종묘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는 과정에서 정전과 영녕전이 불 타 소실됐다가 전란 후 광해군에 의해 재건됐다. 이후 영조와 헌종 때 확장되며 지금의 19칸, 길이 101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단일 목조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시끄러운 종묘 앞 거리. 국가유산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인근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에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이 일대 토지주들이 11일 서울 종로구 다시세운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1.11[연합뉴스 사진]
문제는 조선이 망하면서 벌어졌다. 일제는 도시 정비를 명분으로 종묘의 북쪽 별궁인 창덕궁과 종묘 사이에 종로전차선로(해방 후 율곡로)를 냈다. 광화문에서 동쪽으로 안국역~혜화동~동대문역에 이르는 율곡로는 일제가 남긴,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상처다.
1960년대 말 세운상가 개발은 율곡로에 의해 훼손된 종묘의 공간 질서와 경관을 망가트렸다.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단지인 세운상가는 산업화의 상징이었지만, 창덕궁~종묘~남산으로 이어지던 전통적 도시 축을 훼손한 장애물이기도 했다. 율곡로와 세운상가로 인해 종묘는 고립된 문화유산이 됐다. 종묘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왕의 묘 쯤으로 인식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종묘의 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일제 식민지와 산업화 시대, 그리고 요즘 세운상가 부지 재개발 문제까지 서울의 역사가 한눈에 읽힌다. 한 국가의 품격은 역사와 문화유산을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잘 드러난다고 한다. 세운상가 문제로 시끄러운 이 참에 종묘의 역사를 국민에 제대로 알리고, 그에 걸맞게 서울의 옛 공간 질서를 복원하는 논의도 함께 해보면 어떨까. 바로 이런 게 정치인들이 할 일 아닌가.
[기사발신지=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