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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가히 ‘검진 공화국’이라 불릴 만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접근성과 건강보험 시스템 덕분에 누구나 손쉽게 병원을 찾고, 정밀 검사를 받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의료방사선 과다 노출’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정기석)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CT 이용량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으며, 이에 따른 암 발생 위험 등 적정 관리의 필요성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3년 통계는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CT 촬영 건수는 333.5건으로, OECD 평균인 177.9건보다 무려 155.6건이나 많다. 이는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 5년간의 추세는 더욱 가파르다. 2020년 591만 명이었던 CT 촬영 인원은 2024년 754만 명으로 27.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촬영 건수는 1,105만 건에서 1,474만 건으로 33.3%나 급증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한 인원 증가보다 촬영 건수의 증가 폭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CT를 촬영하는 경우가 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촬영 환자 1인당 평균 촬영 건수는 2.0건에 달하며, 이는 2020년 대비 5.3% 상승한 수치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비용 역시 천문학적이다. 2020년 1조 3,952억 원이었던 CT 급여비용은 2024년 1조 7,984억 원으로 28.9% 증가하며 건강보험 재정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잦은 검사가 신체에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이다. 의료방사선 피폭량의 총합을 나타내는 '집단 유효선량'은 2020년 7만 9,102 man-Sv에서 2024년 10만 3,125 man-Sv로 30.4% 증가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일반 국민이 병원 검사를 통해 받는 방사선 피폭량이 관련 업종 종사자들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2024년 기준, CT 촬영을 이용하는 국민의 연간 평균 피폭량은 2.1mSv다. 이는 매일 방사선을 다루는 방사선 작업종사자의 연평균 피폭량(0.28mSv)의 약 8배에 달하는 수치다. 심지어 고도가 높은 곳에서 근무하여 우주 방사선 노출 위험이 큰 항공기 승무원의 피폭량(1.72mSv)보다도 높다.
구체적인 검사 항목으로 들어가면 위험성은 더 선명해진다. 복부 CT를 단 1회만 촬영해도 노출되는 방사선량은 약 6.8mSv에 이른다. 이는 방사선 작업종사자가 1년 동안 받는 평균 방사선량보다 24배나 많은 양을 단 몇 분 만에 받는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국제방사선방어학회(ICRP) 등 국제기구에 따르면, 환자에게 허용되는 방사선량의 법적 한도 기준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검사를 통해 얻는 이득이 위험보다 크다는 판단하에 의료진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적 데이터는 명확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연간 방사선 피폭량이 100mSv를 초과할 경우 암 발생 위험은 0.5%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자료에 따르면, 연간 100mSv를 초과하여 방사선에 노출된 인원은 2020년 3만 4,931명에서 2024년 4만 8,071명으로 37.6% 급증했다. 이들의 1인당 평균 촬영 건수는 무려 13.2건에 달한다.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례 중에는 한 해 동안 무려 130회의 CT를 촬영한 환자도 있었다. 이 환자가 노출된 방사선량은 약 234mSv로 추정되는데, 이는 방사선 작업종사자 평균 피폭량의 약 836배에 해당하며, 암 발생 위험이 유의미하게 높아지는 구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방사선 노출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정작 정확한 정보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는 현저히 낮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25년 9월 실시한 인식도 조사 결과, 응답자의 87.8%가 '의료방사선'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으나 실체적인 지식은 부족했다.
가장 대표적인 오해가 MRI(자기공명영상)다. MRI는 방사선이 아닌 자기장을 이용하는 검사로 방사선 노출이 전혀 없다. 그러나 조사 대상자의 71.4%는 여전히 MRI에서 방사선이 발생한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 반면, 실제로 방사선이 발생하는 초음파(실제로는 초음파를 이용하므로 방사선 없음)에 대해서는 31.4%가 방사선이 발생한다고 답하는 등 검사 원리에 대한 혼선이 컸다.
이러한 정보 불균형은 '불필요한 검사 거부'나 '합리적 검사 선택'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다행히 공단이 운영하는 '의료영상검사 이력조회 서비스'를 이용해 본 국민의 88.9%는 이 서비스가 "불필요하거나 중복된 촬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환자들이 합리적으로 의료영상검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공단은 현재 홈페이지와 'The건강보험' 모바일 앱을 통해 국민 누구나 자신의 CT, 유방촬영 이력을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방사선 노출에 특히 취약한 12세 미만 아동의 일반 X-ray 촬영 이력까지 관리 범위를 확대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찾아내지 못했던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축복이다. 하지만 '다다익선'식의 검사 문화는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독이 될 수 있다. 병원을 옮길 때마다 반복하는 중복 검사를 지양하고, 자신의 검사 이력을 꼼꼼히 관리하는 '방사선 가계부' 작성이 필요한 때다.
"꼭 필요한 촬영은 Yes, 과다 노출은 No." 이 간단한 원칙이 과잉 진료의 시대에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