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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Doc Drug] ‘바늘’ 꺾고 ‘알약’ 택한 노보 노디스크, 비만 치료제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다
  • 정하리 기자
  • 등록 2026-01-07 08: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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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ini 생성 이미지

글로벌 제약 산업의 지형도가 다시 한번 재편되고 있다. 


덴마크의 제약 거물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가 2026년 1월 5일(현지시간), 전 세계가 기다려온 경구용 비만 치료제 ‘위고비 필(Wegovy Pill)’의 미국 내 판매를 공식 개시했다. 이는 2020년대 초반 주사형 치료제가 가져왔던 충격 이상의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를 제약 산업의 ‘아이폰 모먼트(iPhone Moment)’라 부르며, 비만 치료가 대중 소비재 영역으로 편입되는 결정적 분기점이 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간 비만 치료제 시장의 최대 걸림돌은 역설적으로 ‘주사기’ 그 자체였다.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스스로 배에 바늘을 꽂아야 한다는 심리적 저항감은 시장 확대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위고비 필은 이러한 심리적·물리적 장벽을 단숨에 허물었다.

 

이번에 출시된 경구용 제제는 기존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에 SNAC(Salcaprozate Sodium)이라는 흡수 촉진제를 결합해, 위산에 의한 분해를 막고 혈류로의 흡수율을 극대화했다. 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알약 복용만으로도 체중의 15~20%가량을 감량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는 '먹는 약은 주사보다 약하다'는 의학계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부순 결과다. 이제 환자들은 냉장 보관이 필요한 주사 펜을 챙기는 대신, 아침 영양제 한 알을 먹는 것으로 비만 치료를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업계가 가장 경악한 지점은 가격 책정이다. 노보노디스크는 위고비 필의 한 달 복용 가격을 149달러(약 21만 원)로 확정했다. 기존 주사제 가격이 보험 미적용 시 1,300달러를 상회하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90% 가까운 가격 파괴를 단행한 셈이다.

 

이러한 ‘공격적 약가(Aggressive Pricing)’ 정책은 다분히 전략적이다. 첫째, 후발 주자인 일라이 릴리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의지다. 릴리의 경구용 후보 물질 ‘오포글리프론’이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노보노디스크가 가격 하한선을 극단적으로 낮춰버림으로써 경쟁사의 수익성을 압박하는 전략이다. 둘째, ‘규모의 경제’ 실현이다. 가격을 낮춰 환자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면, 개당 마진은 줄어도 전체 매출 규모와 시장 점유율은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이는 제약사가 전통적인 고가 전략을 버리고 소프트웨어 기업과 같은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을 지향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과거 노보 노디스크는 위고비 주사제의 폭발적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판매 제한’이라는 굴욕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다. 주사제는 특수 용기인 ‘펜 주입기’의 생산 속도가 약물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병목 현상이 심각했다.

 

하지만 알약은 다르다. 일반적인 정제 생산 라인은 주사제 생산 라인보다 구축 비용이 저렴하고 생산 속도는 수십 배 빠르다. 노보노디스크는 2024년부터 전 세계 곳곳의 CMO(위탁생산) 시설을 확보하고 자사 공장을 증축하며 이번 출시를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공급 안정성이 확보된다는 것은 곧 처방의 연속성을 의미하며, 이는 장기적인 매출 안정화로 이어진다.

 

위고비 필의 보급은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149달러라는 가격은 중산층 이하 시민들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는 소득 수준에 따른 ‘비만 불평등’을 해소하는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너무 쉬운 다이어트’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처방 기준이 완화되고 접근성이 좋아짐에 따라, 치료가 불필요한 저체중 미용 목적의 오남용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식단 조절과 운동이라는 건강의 기본 원칙이 경시되고 약물에 의존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위고비 필의 미국 출시 소식에 뉴욕 증시의 헬스케어 섹터는 즉각 반응했다. 노보 노디스크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며, 시가총액은 유럽 기업 중 압도적 1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주사기 없는 비만 치료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제 관심은 이 파격적인 알약이 언제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 상륙할 것인지, 그리고 보험 체계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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