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이해충돌 방지법] ① 만장일치 통과에도 멈춘 약사법
부처 이견과 '제2의 타다' 프레임에 막혀…본회의 상정 사상 초유의 불발
'중개자'가 '판매자' 겸하는 구조적 모순…국민 건강권 위협하는 리베이트 우려도
[※ 편집자 주 = 비대면 진료가 의료법 개정으로 제도화의 길에 들어섰지만,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업 겸업을 제한하는 '약사법 개정안'은 유례없는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 법안은 여야 합의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2025년 12월 30일 열린 본회의 안건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해를 넘겼습니다. 연합뉴스는 보건의료의 공공성과 스타트업의 혁신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이번 사태의 전후 사정과 쟁점을 분석하고, 상생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 세 편을 제작해 송고합니다.]
길어지는 의료공백에 보건소도 비대면 진료…의료 현장 악화 (CG)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사진]
2025년의 마지막 입법을 마무리하던 12월 30일 국회 본회의장.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통과되며 새로운 의료 시대의 문을 열었지만, 정작 플랫폼의 독주를 견제할 안전장치였던 '약사법 개정안'은 안건 목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상임위(보건복지위) 만장일치 의결과 법사위 통과까지 마친 법안이 본회의 문턱에서 멈춰 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비대면 진료가 제도권에 안착하는 역사적 순간, 이를 지탱할 핵심 법안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로막힌 셈이다.
사태의 발단은 플랫폼 산업의 혁신성을 우선시하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일부 정치권의 강한 반발이었다. 중기부는 이 법안이 닥터나우 같은 스타트업의 숨통을 조이는 '제2의 타다 금지법'이라며 전방위적인 저지에 나섰다. 국회 내 스타트업 지원 모임인 '유니콘팜' 소속 의원들 역시 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과잉 규제라는 논리를 앞세워 대통령실과 국회 지도부를 압박했다. 여기에 청와대 내 기류가 '속도 조절'로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건복지부 운신의 폭을 좁혔다.
◇ 편의성 뒤에 숨은 '수익 독점'…이해충돌 논란의 본질
논란의 핵심은 플랫폼이 환자와 병원을 잇는 '중개자' 역할을 넘어 직접 의약품을 공급하는 '판매자' 지위까지 갖게 될 때 발생하는 구조적 이해충돌이다. 현재 업계 1위인 닥터나우는 '비진약품'이라는 도매 자회사를 설립해 제휴 약국에 특정 의약품 패키지 구매를 제안하거나 자사가 유통하는 약을 보유한 약국을 앱 상단에 배치해 환자의 선택을 유도해왔다는 의혹을 한때 받았다.
국회 보건복지위가 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이유도 명확하다. 이런 행태가 의료 현장에서 엄격히 금지해 온 리베이트와 담합의 변종으로 흐를 위험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배달 앱이 광고비를 낸 식당을 상단에 노출하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대상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해진다. 특정 플랫폼 자본이 제약사-도매상-약국으로 이어지는 공급망 전체를 종속시킬 경우 결국 의사의 처방권과 약사의 조제권은 플랫폼의 알고리즘 아래 놓이게 된다.
◇ 혁신 보호인가, 공정 질서 파괴인가…안개 속 입법 운명
플랫폼 업계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들은 "약국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고 비대면 진료의 완결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기득권과 관료의 규제에 가로막혔다"고 주장한다. 플랫폼이 직접 의약품 유통에 관여하고 재고를 확보해야만 환자에게 안정적으로 약을 공급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보건당국과 전문가들의 시각은 확고하다. 의약품 유통은 공정성이 생명이며 플랫폼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유통을 강제하는 행위는 결국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건강보험 재정의 왜곡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기술적 편리함보다 '신뢰와 공정성'이 우선돼야 하며 플랫폼이 공정한 중개 역할에 집중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분석이다.
비대면 진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약사법의 공백은 국민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플랫폼 이해충돌 방지법은 단순히 특정 기업의 영업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의약품 유통 질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2026년 새해, 기약 없는 표류를 이어가고 있는 이 법안의 운명은 우리 입법 시스템이 신기술의 혁신과 공공의 가치 사이에서 얼마나 정교한 조율 능력을 갖췄는지 시험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전망이다.
[기사발신지=연합뉴스]